"아이큐 84라니.... 소설 제목 한번 특이하다"
집 책장에 꽃혀 있던 이 책과 맺어진 나의 첫 인상이다.
물론 내가 산게 아니다...
한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독서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 즈음 딸의 책장에 꽂혀 있던 1Q84라는 책을 발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색체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소설을 읽으며 은밀하고 표현하기 힘든 내면의 세계를 또렷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하루키라는 작가에게 반해 바로 다음 책으로 선택한 것이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로 알고 있었던 노르웨이의 숲은 색채가 없는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소설에서 느꼈던 암울한 느낌과는 다른 애틋하면서도 잔잔하게 흘러가는 로맨스 소설이어서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고
누구나 학창 시절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이루어지지 못한 진지한 사랑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여서 학창 시절과 겹쳐보며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았다.
그 뒤를 이어 손에 쥔 책이 바로 1Q84.
아이큐 84로 잘못 이해했던 유치한 제목과는 다르게 책의 표지는 상당히 감각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이 이상한 매칭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책의 앞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1Q84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자꾸만 IQ84가 입에 붙어 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책의 품격이 20%는 낮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책은 각권 600페이지가 넘는 데다 무려 3권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소설( 본인에게 )이었으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난 후 몇 주간을 무라카미 하루키 고픔으로 지내왔던 지라 그다지 고민 없이 손에 들고 읽기를 시작했다.
"이런 류의 소설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미스터리 로맨스?"
이 소설은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한동안 헐리웃 영화에서 유행하던 평행우주 이론 위에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벤저스를 비롯한 미국 히어로 영화들에서 흔히 나오는 요란하게 뻥 뻥 터지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평행우주가 나온다고 해서 일본 문학과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지겹게 등장하는 이세계물도 아니다.
그러나 일본 이세계물에서 거의 필수적으로 나오는 밤하늘에 떠 있는 여러 개의 달이 이 책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거기까지일뿐 2개의 달은 그저 연극을 위해 뒤에 설치한 이세계임을 나타내는 무대 소품정도의 의미밖에 갖고 있지 않다.
주인공이 원래 살고 있었던 세계와 이 세계는 공기주머니를 만드는 난쟁이들을 제외한다면 너무나도 동일하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뭔가 엄청난 것( 어벤저스 스러운? )이 뒤쪽에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와는 다르게 3권이 끝날 때까지도 총은 등장하되 총격씬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혼란과 미묘한 현상들을 캐치하여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수준 높은 심층분석에 기반한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묘사로 진행되기 때문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의 끈을 놓을 틈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80년대 스필버그 감독이 리메이크 한 드라마 환상특급( The Twilight Zone )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오리지널 환상특급을 본 적은 없지만 스필버그감독의 환상특급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스터리 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는 당시 십대였었던 나의 뇌리 속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요즘 환상특급 같은 류의 영화 소설들은 접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그런 면에서 1Q84를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상당한 장르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킬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치곤 1Q84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논리적으로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임에도 손에 땀을 쥐는 액션물의 긴박함 보다는 디테일한 주변 상황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끌어올리고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묘사를 생동감있거 묘사하여 잔잔한 긴장감에 숨죽이며 소설에 빠져들게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사람을 죽일때도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칼이나 총 같은 부담스러운 물건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은밀하게 킬러로 활동하는 주인공 아오마메가 호신용 권총 한자루를 구하는것도 총기소지가 불법인 나라의 엄연한 현실이 면면히 반영되어 쉽지않은 경로와 은밀한 방법으로 총기를 구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치 내가 직접 그런 곤란한 물건을 구하고 있는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몇 나오지 않는 살해장면에서 인명살상의 무게감이 더욱 무겁고 내 손에 피라도 묻힌듯한 불결한 기분이 진지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 외에 제3의 주인공이 3권에 등장한다.
우시카와, 상당히 못생기고 독특한 인물인데, 나는 읽는 내내 베트맨에 나오는 팽귄맨( 데니 드비토 )이 떠올랐다.
1권에서의 주인공이 덴고 2권의 주인공이 아오마메라면 3권의 주인공은 당연 우시카와이다.
1Q84를 읽고 난지 서너달이 지난 지금에도 머리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1Q84에 대한 기억은 우시카와에 대한 에피소드들 이다.
형사콜롬보같은 집요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자로 악역으로 등장한게 안타까울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 소설을 읽고서 매력적인 악인이 얼마나 이야기를 풍성하고 흥미진진하게 하는지 깨달게 되었다.
우시카와가 등장하는 글의 후반부로 가면 한동안을 상당히 추리소설스러운 긴박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부분에서 또다시 판타스틱 로멘스적인 느낌으로 급하게 바뀌게 되는데, 사실 나에겐 이부분이 조금 어색하다고 느껴진다.
글의 재미를 위한 구성이었을수 있었겠지만 글의 초중반을 지배하는 환상적인 로멘스 분위기와 많이 달라보였다고 할까?
그렇다고 나쁘다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이렇게 많이 다른 구성이어서 더 좋았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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