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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드는 애잔함[빙점]

by 염치없는한량 2024. 2. 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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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사에서 발행한 2018년도 판

 
독서...
 
작년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서 독서라는 수준 높은 취미생활은 별 관련이 없다 생각했었다.
뭐 한지식 하는 사람들이나 즐기는 고급 취미 정도?
 
하루의 할 일을 마치고 피로를 풀기 위해 독서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은 교과서 내용처럼 현실감이 없게 들렸고, 머나먼 타국에서나 일어나는 신기 진기한 뉴스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머릿속이 비어서는 제대로 된 창작을 할 수 없다는 지인(아내)의 조언에도 그저 귓등으로 빨리 흘려보내야 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살았었다.
 
물론 직업(게임크리에이터)이 직업인지라 책을 전혀 안 보는 건 아니다.
대부분 디자인이나 개발에 관련된 전문서적이어서 그렇지...
 
 
우여곡절 끝에 비록 소설분야일 뿐이지만, 여하튼 난 다시 독서라는 고급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독서가 입문자에게 주는 최고의 메리트는 핸드폰이 아닌 종이책을 손에 들고 다닌다는 점인듯 하다.
이 점은 나를 꽤나 뿌듯하게 해준다. ㅎ
 
 
본론으로 들어가면 주말에 동생의 집을 방문했다가 책장에 꽃혀있던 빙점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입문자들이 읽기 쉬운 얇은 책들만 봐 왔었는데, 최근 1Q84를 읽게 되면서 이젠, 두꺼운 책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던 터였기 때문에 나는 먹이를 찾는 승냥이 처럼 동생네의 책장을 유심히 살피며 읽을 책을 찾고 있었다.
 
책의 표지에 적힌 빙점이라는 제목은 얼음이 어는점? 이라고 스스로 이해했다.
책의 표지 그래픽과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갑고 쓸쓸한 느낌이었다.
 
"으흠...조금 재미있는 책을 찾고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책을 끄집어 내기를 몇분간 망설였다.
 
책의 두께는 거의 프로그래밍 전문서적 만큼 두꺼웠다.
나는 전문서적도 완독을 못하는 스타일이라
왠지 용기가 나질 않아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곧 집에 갈 타이밍이었기에 어쩔수 없이 손을 뻣어 빙점을 책장에서 끄집어 냈다.
 
책을 열어서 확인해 보니 총 페이지는 616페이지.
나로선 엄청난 용기를 낸 샘이다.
 
어쨋든 머리에 든게 없으니 많이 많이 구겨 넣자는 생각으로 책을 빌려 집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책의 표지를 열고 표지 안쪽으로 접혀 있는 작가의 약력을 보곤 바로 실망스러운 마음을 피할길이 없었다.
 
미우라 아야꼬 (1922~1999)
 
"헐...할머니가 쓴 고전 문학이잖아?"
 
아무래도 이번 책 고르기는 헛발질을 한 것 같았다.
 
다 읽지 못할것 같은 불길함을 억지로 이겨내고 몇장을 넘기니
차례 뒤로 옮긴이가 쓴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라는 글이 있었다.
 
독서의 정석은 책의 커버부터 천천히 다 읽어 들어가는 것이라는 지인의 어드바이스 때문에 옮긴이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뭐여? 이 인간...스포일러 아냐?"
 
두 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속에 결론이라고 의심되는 내용과 함께 책의 줄거리다 다 들어있는게 아닌가?
심지어 후속편으로 나온 책 선전까지 하고 있었다.
 
한장을 더 넘겨 보았다.
 
등장인물소개...

 
등장인물이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책은 어릴때 동네 만화방에서 읽었었던 만화책들에서 본 이후 지금까지 어떤 책에서도(별로 읽은 것도 없지만) 본적이 없었다.
 
잠시 책의 커버에 있는 1922년생 작가의 약력을 다시 읽어보니 1964년도에 쓴 작가의 거의 초기작품이었다.
 
"어휴...고전 문학 맞네..."
 
첫인상부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동생 앞에서 온갖 폼을 잡아가며 빌려온 책이고 또 옆에서 지인의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끝까지 읽어야만 했다.
 
 
 
오래된 소설이었고 또 배경이 2차세계대전 즈음에 일이어서 등장 인물의 생각이나 말투가 지금 사람들의 것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황순원의 소나기 정도의 느낌?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과거로 가서 근대기의 사람들과 마주친 느낌?
어릴적 할아버지에게서 느껴졌던 완고한 어른의 느낌과 삼성을 일으킨 이병철회장의 흑백사진을 마주 대하는 느낌이었다.

최근 읽었던 1Q84에서 느꼈던 약간은 자극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딸의 끔찍한 죽음 이야기에 접어들면서 부터 1950년도의 일본인들의 삶에 자연스레 동화되어 버렸다.

고전소설이라 비하할만큼 흑백영화 냄새 풀풀나던 소설은  작가의 꼼꼼한 고증과 자세하게 설명하는 디테일로 인해 마치 나 자신을 흑백필름의 피사체로 둔갑시켜 극중 인물로 자리잡아 놓은 듯 했다.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점점 커져가는 갈등, 그리고 놀라운 반전은 600 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분량이 모자라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 소설이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주인공 게이조를 통해 죄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소심한 일본인의 모습인 게이조의 소심한 복수가 걷잡을수 없이 자라나 가정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릴 만큼 거대한 죄악으로 성장하는 것을 통해 독자들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저지르는 작은 악행들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파괴력을 잠재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 요꼬는 현실세계에 태어난 성녀와도 같은 청결하고 곧은 인격을 지녔고 또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다.

그런 그녀가 주인공 게이조의 질투와 배신감으로 저지른 소심한 복수에 휘말려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사는 기구한 운명에 빠지게 되었지만 그런 불행한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명랑하고 쾌활한 모습을 잊지 않으려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읽는 내내 마음을 애잔하게 조여왔다.

그러나 그런 그녀 역시 무의식이라는 곳에 잠재되어 있는 악의 뿌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어쩔수 없음을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죄의 문제에서 우리 인간은 어찌할 힘이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는 것이 작가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책의 앞부분에 적혀있던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에 소개된 책 광고로 생각했었던 이 소설의 후속편을 보기 위해 나는 하루의 지체도 없이 다시 동생 집을 방문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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